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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과 관련한 범도민회의 논평

  • 제4차 국토종합계획에 비추어 본 제주 국제자유도시의 허상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용역 과업지시서 시안을 전면 수정하고, 제 4차 국토종합 계획에 제주의 위상을 높이고 도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실적 내용이 포함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이 발표됐다.
    지난 7월 27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은 2000년에서 2020년까지를 계획기간으로 하는 국토경영 차원의 장기적인 국토비전과 전략을 담고 있다. 이번 계획안은 2년여에 걸쳐 각계의 의견을 모아 마련된 것으로서, 정부에 제출되면 금년 8월∼11월에 관계 부처, 지자체 협의, 중앙·지방 공청회를 거쳐, 금년 12월에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국토건설종합계획 심의회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로 확정되어 당장 내년인 2000년 1월부터 시행된다.
    우리가 이 계획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토종합건설계획이라 함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할 사업의 입지와 시설규모에 관한 목표 및 지침이 될 종합적이고 기본적인 장기계획을 말한다"는 국토건설종합계획법 제2조의 규정에 따라, "국토계획은 국토의 개발과 보전에 관한 장기적·종합적 정책방향을 설정하는 '국가의 최상위 종합계획'"으로서, 현재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자유도시 구상이 이 계획에 영향을 받거나 크게는 이 계획의 하위범주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물론 일정 정도의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있지만).
    특히 지난 특별법 개정시 논란이 됐던 오픈카지노 문제가 중앙정부의 입장을 검토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하다 소멸된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국제자유도시 문제 또한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4차 국토계획안의 핵심을 간추린다면, "밖으로는 한반도가 보유한 동북아의 전략적 관문 기능을 살려 '동북아의 교류중심지'로 발전시키는 국토 골격"을 만드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여기서 '동북아의 교류 중심지'란 "동북아 지역에서 국가간, 지역간, 도시간의 경제, 물류, 문화, 학술, 관광교류 등에 있어서 중심지로서 위상과 역할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즉 이 말은 유럽의 관문 네델란드 처럼 "한반도를 동북아의 전략적 관문(strategic gateway)으로 육성" 한다는 계획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문장이 최근 제주 국제자유도시 구상과 관련하여, 단골처럼 거론되는 "21세기 동북아의 거점도시"와 대동소이한 문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제주는 이 기능을 제주도가 담보하겠다는 거창한 포부를 내세우고 있는 반면, 정부는 이를 남한 아니 한반도 전체를 그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차이가 아니며,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는 바 그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에서 밝히겠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에서 제주와 관련해서 주목을 끄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국제자유도시와 관련한 내용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지방을 9대 광역권으로 나누고 이중에 제주권은 '국제자유관광지역의 조성으로 아·태지역 관광중심화'와 '친환경적 농축산업 및 첨단 생명공학산업 육성'을 전략적 개발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다른 챕터에는 외국인 투자기반 구축을 위한, '신개방거점 : 자유항지역(Free Port Zone)'을 지정·육성한다는 계획이 나와 있다. 여기서 자유항 지역이란, "국제항만이나 국제공항 인근 지역으로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비관세지역이며 반입물품의 보관·분류·배송·환적 등의 물류기능, 가공·조립기능, 무역·보험·법률서비스 등 지원기능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국제경제활동 지역"으로서, 이 계획안에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홍콩과 싱가폴같은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제주도로서는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드디어 정부차원에서 제주 국제자유도시 개발에 힘을 실어 주는구나"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도 잠시 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 자유항은 제주도가 아닌 인천과 부산, 광양항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구상은 지난 22일 열렸던 「21세기 제주시 비전과 발전전략에 대한 세미나」제3주제인 「제주국제자유지역의 실현을 위한 과제」에서 주제발표한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의 아래와 같은 주장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첫째, 홍콩과 비교하여 제주는 공항 및 항만시설, 배후 공업지역, 컨벤션센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조건이 열악하여, 현재로서는 홍콩에 필적하는 '물류중심지'나 '국제금융센터'의 기능을 갖춘 자유지역이 되기는 힘들다. 둘째, 국제자유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공항·항만 등 인프라시설의 확충과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예산지원이 필요하나, 현재 정부는 영종도 및 부산 가덕도에 각각 HUB공항과 대규모 항만 건설계획을 세우고 이에 막대한 정부예산을 투자하고 있어, 제주공항의 HUB공항화 및 제주항의 국제적 자유항 개발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이러한 사항을 고려할 때 제주는 비즈니스 관광과 실버, 가족 휴양을 중심으로 한 국제관광자유지역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즉, 정부는 제주를 무비자,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는 국제관광자유지역으로 개발하되, 제주공항은 계류장 등 부족 시설을 확충하는 선에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며, 주요한 국제자유도시의 기능은 인천과 부산, 광양 중의 한 지역으로 넘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비)관세 혜택은 관광자유지역 보다는 자유항지역에 더욱 그 효용성이 주어지는 바, 엄밀한 의미에서 제주 국제자유도시는 "No-Visa제도를 핵심으로 한 국제관광자유지역의 기능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최장 2020년을 목표로 한 계획임을 주목해야 한다.
    반면 제주도 국제자유도시 구상은 당장 2년 후인 2002년을 관광자유도시로, 2006년을 비즈니스와 물류·교역의 자유기능을 갖춘 자유도시로, 2010년에는 이상을 포함한 복합형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한다는, 주관이 앞선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물론 꿈은 크게 계획도 거창하게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기에, 오히려 불필요한 시간과 역량의 낭비를 초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현가능한 부분까지 놓칠 수 있는 위험 또한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제주 국제자유도시 구상을 냉정하게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희망사항으로 나열돼 있지는 않은지, 충분한 현실성의 고려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말이다.
    너무 스케일 큰 것만 고민하다가 알맹이 있는 플랜을 놓칠 수 있듯이(예 : 우주센터 등) 현 시점에서 21세기 제주의 비전을 새롭게 재점검해야 한다는 말이다. 설사 복합형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는 관광자유지역의 추진과정과 그 결과를 보면서 차근차근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므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노비자 중심의 제주국제관광자유도시를 중심으로 그 타당성 조사를 진행시켜나가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다.
    특히 이 계획에서는 제주 국제관광자유지역 마저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 통일 이후를 대비한 '금강산∼설악산 벨트' 및 'DMZ의 평화생태공원'을 조성 국제관광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 - 시급한 방향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주국제자유도시 과업지시서의 시안은 전면 재수정돼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홍콩, 싱가포르를 들먹이며 도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진지하게 주어진 상황을 진단하고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우는데 도정이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오히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절실한 과제는, 다행히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 속에 제주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도민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기 위해 모든 역량을 모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구적 기대는 접고 현실에 기반한 섬세하고도 치밀한 접근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친다.

    1999. 7. 29

    참여자치와 환경보전을 위한 제주범도민회
    (공동대표 : 임문철 / 김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