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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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가까이 들여다보기

  • 여행길에서 모색해 본 제주의 미래와 대안


    사람들이 물어왔다. 왜 그곳이냐고. 유명한 관광지나 알려진 볼거리가 (적어도 우리에게는) 없는 곳. 그저 ‘태국 옆 나라’ 내지는 ‘베트남 옆에 붙어있는 사회주의 나라’ 정도로만 드물게 알려진 곳. 왜 ‘라오스’로 가느냐고.


    비슷한 종류의 질문들이 여러 번 반복되고 그에 대한 답을 고민하기를 거듭하고 나서야, 나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답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없어서’라고 말이다.


    콜로세움과 루브르가 없는 곳. 그럴싸한 번지점프대 하나 없는 곳. 하다못해 캥거루나 미어캣 등으로 표상되는 유명한 동물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곳. 그래서 내 선택은 라오스였다.


    착한 여행자의 착한 선택, 공정여행


    여행할 곳과 여행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지난 여름 주민소환 국면에서 읽었던 한 권의 책이었다. 공정여행 가이드북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희망을 여행하라]가 그것이다. 당시 책을 읽고 작성했던 독서일기의 한 부분을 잠시 소개한다.


    여행이 단지 관광이나 방문이라는 행위가 아니라, 한 공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게 하는 중대한 행위라면, 그 여행은 반드시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며 공정해야 한다. 가깝게는 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 분명한 '관광', 관광산업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골프관광객을 위해 한라산 중산간이 대거 파괴되고 대형 호텔과 리조트들이 들어섰지만, 이 개발의 이익은 골프장을 지어낼만한 거대자본의 것이지 지역주민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파헤쳐진 한라산과, 골프장에서 잡초 따위를 매는 일용직 노동자로 변모한 지역주민, 장마철만 되면 걱정해야 할 침수피해와 같은 허접한 잔해들이었다. 카지노 관광객을 위해 우리가 앞으로 잃어야 할지도 모르는 것들, 초고층빌딩이라는 랜드마크를 위해 또 앞으로 잃어야 할지도 모르는 것들을 상상한다면, 관광과 여행의 방식은 단순한 행위가 결코 아니다.


    개발의 쓰나미에 있어 우리보다 더욱 취약한 구조를 띌 수 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백 개의 섬에 백 개의 리조트가 들어선 몰디브 주민들은, 나고 자랐으며 삶의 터전이었던 땅과 바다를 헐값에 리조트 개발업자에게 넘긴 후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관광객에게만 제공되어야 할 몰디브의 해안에 원주민들의 출입은 금지되었고 그들은 일용직 노동자 혹은 걸인이 되었다. 이게 과연 몰디브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주로 동남아시아)에만 국한되는 문제일까. 멀게는 제주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단순한 기우가 아닐 것이다.


    제국주의적 침략의 산물들을 모아놓고 그를 활용해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는 ‘문화강국’ 혹은 ‘선진국’이 아닌 곳. 궁극적으로 지역주민의 삶과 유․무형의 행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의 여행. 두 가지 명제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곳을 고민하던 중, 대학시절 이미 라오스에 다녀왔던 선배들의 추천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때의 나 역시 ‘거기에 가면 뭐가 있느냐’는 질문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선배들은 ‘가 보면 안다’는 대답을 했었던 듯 하다.


    여행의 원칙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자유여행이다보니 항공편 예약에서부터 숙소를 결정하는 것, 이동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것 등의 모든 준비과정을 스스로 처리해야만 했다. 어렵사리 만든 여행의 기회를 알차게 쓰고 오기 위해서는 세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던 기간은 마침 주민소환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였다. 주말은 반납한지 오래였고, 11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었던, 그런 날들이었다. 돈만 지불하면 되는 항공권 예약을 제외한 모든 준비는 당연히 소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따금씩 짬을 내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절체절명의 시간일 터였다. 여행준비를 하는 행위 자체가 직무유기이자, 고통 받는 강정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내내 다짐했다.


    개발광풍의 한복판에 놓여 맥없이 흩어져가는 제주의 대안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노라고. 숱하게 겪어온 개발의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을 확인하고 오겠노라고. 그리고 착한 여행을 하겠노라고.


    공정여행을 위해 세운 원칙-엄밀히 말해 내가 세웠다기 보다는 ‘따르겠다’고 다짐한-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 여행하는 동안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는 가지고 온다.
    ▫ 대륙 內 이동시 비행기는 절대 타지 않는다.
    ▫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식당 등을 이용한다.
    ▫ 공정한 고용을 창출하는 업소와 시설인지 확인하고 이용한다.


    결과적으로, 여행하는 동안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를 가지고 오겠다던 다짐은 지킬 수 없었다. 여행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40L들이 배낭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쓰레기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라는 자각 덕에 일회용품과 쓰레기 발생은 평소의 1/10 수준도 되지 않았기에 배낭의 무게가 온전히 쓰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 번씩 갈아타 도합 21시간에 이르는 장거리 버스이동 시간이 주는 피로감도 거기에 한 몫 했다.


    실수투성이 초보여행자


    아직 인천과의 직항노선이 없는 라오스로 들어가기 위해 내가 선택한 루트는 방콕에 도착해 하루를 보낸 후 태국-라오스 국경마을인 농카이로 이동,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이었다. 방콕에 도착한 첫날은 의외로 순조롭게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수완나품 공항 앞에 늘어선 택시행렬을 씩씩하게 지나쳐 버스터미널로 이동,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를 저렴한 가격에 탈 수 있었다. 낡디 낡은 시내버스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것이라 영어로 된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동물적 본능에 의존해 내릴 곳을 알아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40여분을 달려 푸른 눈의 여행자 몇몇을 ‘눈치껏’ 따라 내리니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카오산 로드였다. 그만하면 초보여행자치고 괜찮은 성과였다.


    문제는 여행의 둘째날 발생했다. 유나이티드 아파트 주차장에서 그랜드호텔 후문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길치’인 나는, 첫날의 알량한 성과(?)에 젖어 자신감 충만한 상태로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다 국제미아가 될 뻔 했다. 생명줄과도 같은 배낭이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2시간여를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결국 게스트하우스 체크아웃 시간을 20분 남겨놓고 택시를 타야만 했다. 역시나 유나이티드 아파트와 그랜드호텔 후문 사이에서 방황한 격이었다. 나의 헛발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내내 방콕에서 농카이로 가는 야간버스를 기다리며 북동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8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행여나 누군가 채 가기라도 할까봐 무거운 배낭을 잠시도 등에서 놓지 못한 채로 말이다. 가난한 여행자의 필수품인 지도와 버스시간표를 챙기지 못한 탓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바가지 요금을 내고 툭툭이를 잡아타고 시내 중심가 남푸 분수대로 이동,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는 동양여자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짧은 영어를 최대한 동원해 ‘공정여행’을 시도하고 있다는 설명을 반드시 해야만 했다. 다행히 생태관광을 자국 발전의 중요한 모토로 삼는 라오스정부의 지침 덕에 공정여행이라는 표현 자체는 라오스인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정여행이 반드시 담보해야 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공정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여행초반에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영어발음(사실 기본적인 문법조자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을 알아듣지 못해 대화 자체가 매우 힘겨운 일이었다. 11박 12일의 여정동안 숙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을 이용할 수 있었으나 식사의 경우 모든 업소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었다. 매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그런 힘겨운 대화의 과정을 거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동물적 본능’에 의지해 최대한 현지인이 운영할 것 같은 곳을 골라 다니기 위해 애를 썼다.


    콥 짜이, 메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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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티안의 메콩강변
    물과 길을 분리하는 인공의 구조물이 없는 곳이다.
    한 나라의 수도를 관통하는 강이 이와 같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느긋한 수도라는 표현 그대로, 비엔티안은 여유와 평화가 충만한 도시였다. 그리고 비엔티안에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메콩강과 남푸 분수대가 훌륭한 이정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가만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웠지만 온종일 쏘다니며 걷고 또 걸어도 행복했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건축물인 파툭싸이(아이러니하게도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었다)를 보고 난 후, 물을 사 마시기 위해 구석진 동네의 어느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어서 그런지 가게 주인은 영어를 할 줄 몰랐다. 물을 달라는 간단한 표현이었는데 알아듣지 못해,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하니 그제서야 알아들었다는 듯 냉장고를 가리켰다. 냉장고에서 직접 생수를 꺼내 값을 지불한 후 고맙다고 말하고 나오려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가게주인의 딸이 ‘콥 짜이’가 ‘thank you’ 라고 가르쳐 주었다. ‘싸바이 디’가 라오스의 인사말이라는 것까지.


    가게를 나와 메콩강변으로 향하는 노을 지는 시각, 생수 한 병 손에 들고 터벅터벅 걸으며 콥 짜이, 콥 짜이, 따라해 보았다. 여행하려는 곳의 말 몇 마디 정도는 배우고 갔어야 했다.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게으름과 소흘함을 자책하는 것도 잠시, 괜시리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저 몇 마디 말을 배웠을 뿐이었는데도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잠시 후 한가로이 흘러가는 메콩강변에 이르렀다. 휘황찬란한 유람선이 떠다니지도 않고 강변이 말 그대로 강변으로 그냥 남아있는 곳. 물과 길을 분리하는 인공의 구조물이 하나도 없는 곳.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 이따금씩 눈이 마주칠 때마다 수줍게 눈인사를 하거나 ‘싸바이 디’하는 사람들.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이 습관처럼 성격처럼 몸에 배인 사람들이었다.


    외부로부터의 투자, 정체성을 잠식하는 자본


    비엔티안의 명물 중 하나인 탈랏사오(아침시장)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탈랏사오는 각종 물건들이 오가는 시장인데 특히 손재주 좋기로 이름난 고산지대의 소수민족들이 만든 각종 직물과 기념품, 불상 등이 직거래로 유통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길을 잃지 않고 한 번에 찾아낸 탈랏사오 앞에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여행안내서에는 흥겨운 재래시장이 묘사되어 있었는데, 내가 보고 서 있는 것은 거대하고도 평범한 건축물로 변해버린 탈랏사오 ‘쇼핑몰’이었던 것이다. 말레이시아 갑부의 자본으로 2008년에 지어진 그 건물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에서 볼 법한 쇼핑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교적 빵빵한 에어컨에 정돈된 실내,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아놓고 팔고 있었다.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쇼핑몰 뒤편에 탈랏사오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쇼핑몰 뒤로 다른 건물의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새로 들어선 건물과 앞으로 들어설 건물 사이에 재래시장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는 쇼핑몰을 의식해서인지 팔고 있는 물건과 그 가격 등에 별다른 차이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간단히 둘러보기만 할 뿐 무언가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은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나와 같은 여행자들은 탈랏사오의 ‘흔적’을 맴돌고 있었다. 자본의 유입과 개발이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절대적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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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말레이시아 갑부에 의해 국적불명의 쇼핑몰로 변해버린 탈랏사오. 외부로부터의 투자가 지역의 정체성을 잠식하는 현상은 비단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행복한 방식의 여행


    앞서도 밝힌 바 있지만 생태관광을 중요하게 여기는 라오스에서 ‘공정여행’은 낯선 표현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훌륭한 자연환경을 보유한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최적의 것을 찾은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중점을 두고 육성하는 산업이라는 증거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Fair Trek 운동이 그것이다. 카약킹, 코끼리 투어(*공정여행 지침 중에는 동물을 학대하여 운영되는 방식의 관광을 지양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코끼리 투어가 그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라오스의 코끼리 관광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성행하는 코끼리 투어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등, 반나절에서 길게는 3~4일짜리 투어를 제공하는 수많은 여행사들이 community-based tourism(지역기반관광)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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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앙프라방 시내의 여행사들은 이처럼 Fair Trek을 표방하며 운영되고 있다. 지역기반여행, 경제적 측면에서의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자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여행상품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정보를 제공받고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그 중 유독 관심을 두었던 곳은 루앙프라방의 Tiger trails라는 여행사였는데, Fair Trek을 표방하는 수많은 여행사 중에서도 특히나 평판이 좋은 곳이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행자가 지불하는 돈이 어떤 분야에 어느만큼 쓰이는지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Tiger trails에서 제공하는 투어 중 내가 선택한 것은 코끼리투어와 폭포에서의 수영, 점심식사 등을 포함하는 반나절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애초 여행사에 방문해 관련정보를 얻고 논의할 때만 해도, ‘나는 코끼리는 절대 타지 않겠다’는 입장이 매우 확고했다. 야생성이 강한 코끼리가 사람을 태우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걷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동물학대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Tiger trails는 벌목현장에서 혹사당하고 부상당한 코끼리들을 구조하여 하루 한 시간의 관광노동을 시키고, 각각의 코끼리들에게 그 노동의 댓가를 적립해 주는 곳이었다. 이미 수 십 년간의 노동으로 야생성을 잃어버린 코끼리들은,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해도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해 살아남을 확률이 극히 적다고 했다. Tiger trails는 그런 코끼리들에게 최소한의 노동여건을 마련해 주고, 적립해 둔 노동의 댓가로 질병에 대한 치료와 각종 관리를 제공한다고 했다. 한 시간짜리 코끼리 투어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여행자와 코끼리가 교감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데, 이때 여행자들은 자기가 타고 온 코끼리가 살아온 삶과 이름, 나이, 성격 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그룹에 참여했던 한 영국인 대학생은 코끼리 투어를 여러 번 경험해 본 사람이었는데, 태국의 코끼리들은 좀 더 공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곳의 프로그램이 코끼리들에게도 만족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며 좋아하기도 했다.


    Tiger trails는 다른 여행사에 비해 10~15달러 이상 비싼 가격을 책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행자가 지불하는 돈의 25%는 △코끼리를 벌목현장으로부터 구조하고 치료하는 일, △지역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등의 교육기금 적립에 의무적으로 배당된다. 또한, Tiger trails와 연계해 투어를 제공하는 코끼리 마을(Elephant village)의 모든 시설과 노동은 인근 마을주민에 의해 제공된다. 여행사가 지역 주민과 연계해 100% 지역주민고용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느긋하고도 밝은 표정의 마을주민들은 코끼리를 돌보고, 여행자의 식사를 마련해 주고, 칸 강을 가로지르는 탓 새 폭포로의 뱃길을 책임져주었다. 여행사에 지불하는 비용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사진과 포스터, 각종 자료들로 여행자에게 제공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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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ving elephants is our mission (코끼리를 구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
    코끼리 마을의 캠프에 설치된 안내포스터다.
    코끼리 투어와 코끼리마을이 운영되는 목적과 방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머물고 싶은 곳으로


    라오스는 지구상의 최빈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다. 2차 산업이 전혀 발달하지 않아 공장이라고는 시멘트 공장과 다국적 기업의 음료수 공장 정도밖에 없다.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으로 둘려 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정치적 소신을 말할 자유는 없어도 돈 벌 자유는 주는’ 정부가 있어, 한 두 가지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관광이다. 너무나 가난해 개발과 자본의 관심대상이 되지 못한 탓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보존할 수 있었고, 조용한 휴양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공항과 도로, 대중교통 등의 기본적인 관광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프랑스의 식민지를 거쳐온 탓에 거리 곳곳에서 유럽식 삶의 양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때문인지 유럽인 여행자들이 매우 선호하는 곳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열악한 인프라가 오히려 이 나라를 장기체류지로 만든다는 데 있다. 실례로 수도인 비엔티안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 루앙프라방까지 500Km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육로로 10시간이 걸린다. 제주의 5․16 도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온 중고 고물버스가 버겨워 하는 것이 절실히 느껴질 정도다. 비행기를 탄다면 엄청나게 시간이 절약될 뿐만 아니라, 버스가 낑낑대며 산길의 급커브를 돌때마다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엄청나다는 점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육로로의 이동이 주는 행복감은, 충분히 그 고생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첩첩산중, 그곳에 드문드문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내가 탄 버스는 마을마다 일일이 정차해 사람들을 싣고 내렸다. 그곳에서 진짜 라오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어느 마을을 가든 ‘아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많이 낳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절감하게 하는 풍경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해맑게 웃고 뛰어다니는 벌거숭이 아이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부담이고 걱정이 되어버린 ‘잘 사는 나라’ 사람의 눈에는 그저 부럽기만 모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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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쏭 강의 아이들
    방비엥의 쏭 강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 어딜 가나 한 무리 이상의 아이들이 모여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 안에 틀어박혀 1인용 게임에 몰두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다른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제대로 된 보존이 가져다주는 유무형의 가치’에 대한 것이었다. 과거 라오스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때문에 3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볼 수 없고, 건물의 신축이 엄격히 제한받는다. 건물의 개보수 역시,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 덕분에 1975년 공산당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사방봉 왕가가 거주하던 건물을 비롯해 도시 전체의 경관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과거의 프랑스 식민지로서의 정체성과, 최소화한 욕망을 구현하는 전통적인 라오스식 삶의 방식이 거대한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었다.


    루앙프라방 시내 중심가에 매일 밤 펼쳐지는 시사방봉 야시장 역시, 착한 여행자들의 지출을 더욱 뿌듯하게 만드는 명물 중 하나였다. 라오스는 하나의 국가라기보다 소수민족의 연합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루앙프라방 북부의 산악지대에 사는 소수민족 사람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비롯한 각종 기념품을 팔기 위해 오는 것이다. 라오스 내 다른 지역들에 비해 물가가 다소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흥정하는 재미와 더불어 지역 주민들, 소수민족 사람들과의 ‘직거래’가 이뤄지기에 충분히 보람 있는 지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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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도시 루앙프라방
    약 100m 높이의 푸씨 언덕에서 바라본 루앙프라방의 전경(중 일부)이다. 3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시내 한가운데 우뚝 솟은 푸씨 언덕은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잘 보존된 자연환경 속에 도시가 스며들어 있었다.


    여행자들은 루앙프라방으로 오기까지의 길고도 고생스러웠던 여정을 보상해주는 여러 풍광과 정취에 매료되어, 길고도 긴 휴가 기간을 ‘머물다’ 간다. 여행 중에 만나 친구가 된 네덜란드인 커플은 ‘과거의 모습에 머물고 있지만 실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를 보여주는 공간’이라 라오스를 정의했다.


    여행을 돌아보며


    (1)우리의 모습은


    줄곧 제주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사방으로 뚫린 도로 따라 2박3일이면 더 볼 게 없는 섬’이 되어버린 곳으로서의 제주. 보고 듣고 느낄 거리는 무한하나 2박3일짜리 볼거리만 보여주고 싶어 혈안이 된 정책결정자들. 지역의 지속가능한 자립기반 하나 합의를 보지 못한 아픈 분열들.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르고, 그 가치를 지키는 방법을 모르는 똑똑한 우리들. 외자유치라는 명목으로, 소중한 우리네 삶의 터전을 그들만의 놀이터로 내어주고 말았던 수많은 결정들. 그리고 지나온 경험에서 배운 것 없이 아직도 외자유치가 곧 제주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떠들어대는 혹자들.


    (2)제주를 공정여행의 메카로


    생애 첫 배낭여행을 공정여행으로 다녀오겠다던 애초의 포부와 달리, 실제 내가 세웠던 원칙 중 끝까지 완벽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대륙 內 이동시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한 가지 원칙뿐이었다. 이용했던 모든 숙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것이었지만, 식사를 해결했던 모든 식당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또한 내가 이용하고자 하는 모든 업소가 공정한 고용을 창출하는 곳인지 확인하는 것도 여행 후반으로 가면서는 전혀 하지 못했다. 전적으로 게을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게으름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제주가 가져다 쓸 만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었다. 관광지의 업소들이 소유형태와 고용의 창출 등에 대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게 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최근 급부상하기 시작한 윤리적 소비자들의 수요가 분명히 존재기에, 그 수요를 충족시켜 줄 자발적 정보제공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게 하자는 것이다. 애써 묻지 않아도 지역주민이 운영함을 알려주는 식당과 숙소, 지출하는 비용의 어느 만큼이 지역사회에 목적의식적으로 환원되는지 보여주는 여행사라면 어떨까.


    작은 배려가 선한 의지를 불러모으고, 우리가 보여주는 변화의 물결이 ‘사람사는 세상’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 착한 여행자들이 한 공간을 건강하게 하고, 더 큰 세상을 변화시키는 곳. 그런 공간으로 제주가 점차 바뀌어간다면 좋겠다. 마구잡이 개발난투극에 아무렇게나 갖다붙이는 메카가 아니라, 신성한 ‘공정여행의 메카’로 제주의 미래가 자리매김하는 그런 날을 꿈 꿔 본다. 함께 꾸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기관지 제49호 참세상만드는 사람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