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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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떨리는 나침반의 희망 _ 2010년을 맞이하며

  •  201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긴장과 불안의 연속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가 아니라고 하면서, 4대강에 대한 집착을 현실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른바 세종시 수정론 관철에 열을 올리면서, TV화면에는 한나라당 수뇌들이 비춰질때면 으레 ‘지역발전이 경쟁력이다’라는 슬로우건이 배경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친재벌, 부자정책을 고수하면서, 한편으로 유가환급금이라며 현금을 나눠주더니, ‘미소재단’ 같은 것들을 띄우며 국민들 마음을 사려고 애쓰는 모습니다. 노동법은 개악되었고, 전국의 전교조 선생님들은 80년대 이래 처음으로 ‘해직’이라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용산 유가족들이 작년말에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하나, 1년동안 쏟은 눈물과 한의 응어리가 총리가 표명한 ‘유감’ 한 마디로 정리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요즘 부쩍 뉴스에서 ‘국격’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과 이를 통한 개발원조 확대도 ‘국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에게도 국격에 어울리게 행동하라고 할까 두렵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말하는 ‘국격’이라는 말에는 왠지 ‘정부시책 강화’, ‘불법시위 엄단’, ‘허가’, ‘능력’ ‘경쟁’, ‘검열’과 같은 말들이 연상됩니다.


      국내 연구기관들이 “터널 끝 힘찬 포효”라며, 2010년 상향된 경제전망치를 앞다투어 내놓고 있습니다. 이른바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며 마음 놓을 수 없다던 정부가 앞장 서서 ‘5% 성장’이라며 가장 높은 전망치를 내놓고 있습니다. 일자리도 내년에는 20만개나 늘어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누리꾼들은 2009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을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합니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세종시 논란 등 줄줄이 터진 악재를 꼬집은 것입니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안하무인(眼下無人)' '첩첩산중(疊疊山中)'이 뒤를 이었으며, '구밀복검(口蜜腹劍·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음)'이라는 말도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작년 10월 이명박 대통령은 '교언무실(巧言無實·교묘하게 꾸며대지만 내실이 없음)'을 인용해 겸손한 자세로 일할 것을 장․차관 들에게 주문했다고 하는데, 이 사자성어야 말로 이명박 정부에게 거꾸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편, 우리사회의 직장인들은 2009년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구복지루(口腹之累)’, 즉 ‘먹고 살 걱정’이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합니다. 한겨레신문 1월 4일자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사회의 가장 당면한 문제로 국민들이 ‘비정규직 증가 등 양극화 문제’를 꼽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물과 기름입니다. 섞이지 못한면 어느 한 쪽은 늘 불안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제주는 2012년 세계자연보전연맹 총회 유치로 환경수도 발판을 마련했다며 야단입니다. 관광객 600만명 시대를 맞이했다며 고무되어 있습니다. 올해 업무개시 첫 날 1,300억짜리 사업을 발주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신호탄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들여다 보니 죄다 도로개발 사업입니다.


      한편, 제주시청 앞에 있는 ‘사랑의 온도계’는 꽁꽁 얼었다는 소식입니다. 작년보다 모금액이 2억이나 적다고 합니다. 복지포럼이라는 곳에서 실시한 조사결과는 대다수 도민들이 의료를 비롯한 생활에 불만족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실시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는 도민 10명 중 9명이 특별자치해서 ‘좋은게 없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비리는 끊일 줄 모르고, 그 정도도 점점 심해지는 인상입니다. 김태환지사는 신년사를 통해 ‘도민대통합의 새제주’를 공언했지만,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진실을 담지 못한 허언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물과 기름입니다. 긴장과 불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문득, 책상 앞에 놓인 달력에 써있는 ‘떨리는 나침반’이라는 문구가 다가옵니다. 신영복 선생의 글입니다.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습니다.


    여읜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습니다.


    만일 바늘 끝이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미 나침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언제 긴장하지 않는 해가 없었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시기가 없었습니다. 이 긴장과 불안은 아직 깨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깨어 있으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긴장과 불안으로 ‘떨리는 삶’이야말로 모두의 희망을 위한 ‘믿을 수 있는 전율’입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선생은 2007년에 펴낸 그의 책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 곤란한 시대를 건너기 위해 명심할 것은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마이너리티들의 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광복이 찾아와도 대한민국에 귀속되지 않았고, 또한 ‘조선사람’으로서의 삶을 부정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삶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이렇게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필시 근대 교육이 가져다 준 지식이나 이론은 없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근대적인 개념에 지배당하지 않는‘지혜’와 같은 것이 있었다.
    디아스포라이자 마이너리티라는 것은 이처럼 국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나
    그 변방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에 근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넘어
    다음 시대를 전망하기 위한 귀중한 시사가 내포돼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어머니는 군사정권기 내내 두 명의 아들 옥바라지에 임해야 했습니다. 군사정권은 어머니를 통해 두 아들이 사상전향을 하도록 압박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배우지 못한 나는 전향인지 뭔지 어려운 얘기 모르겠소”


      자식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는데, 그의 어머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확신 때문이 아니었음을 서경식 선생은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에게 삶이란 늘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일제와 한국전쟁, 군사정권기 옥에 갇힌 두 아들 앞에서 어머니의 삶은 특히 그러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긴장과 불안의 떨림이 '믿을 수 있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희망은 지식인들의 한 조각 지식이나, 집단의 요구 따위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삶으로서 모아지는 지혜를 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삶의 믿을 수 있는 방향이 긴장과 불안의 떨림이라니 참 가슴 답답하긴 합니다만, 적어도 우리의 지금 이 긴장과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희망의 도구로 끌어 안아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한 해, 희망을 만들어 가십시오.

     2010년 1월 4일, 고유기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