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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다운 제주발전, 제주사회 공론의 혁신부터

  •  얼마 전 전국의 각 지역단체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여차 전라북도 무주에 다녀왔다.


     필자에게 무주는 심산유곡의 자연이 살아있는 곳으로 이미지화 돼 있었다.


     그러나 정작 찾아 본 무주의 실태는 매우 안타까운 것이었다. 덕유산 국립공원내의 불야성 같은 상업시설들의 모습이야 국내 여느 국립공원의 그것과 다를바 없었지만, 산 정상 1600M고지까지 뻗힌 스키장의 면모를 접하고는 한탄이 절로 났다. 최고봉인 향적봉을 스키장 곤돌라를 이용해 20분 걸음으로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할말을 잃었다.


      이에 비해 제주는 아직 건강하다. 전국의 국립공원 중에서 그래도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개발, 개발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자연이 곳곳에서 숨쉬고 있고, 아름다운 경관이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급속한 열풍을 불러 일으킨 ‘올레’는 제주가 자연친화적인 느림과 건강의 메카로 나아갈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나아가, 하루가 다르게 생겨난 ‘우회도로’탓에 소외되었던 지역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농촌경제가 조금이라도 살아나는 경제모델로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크기변환_IMG_2183.JPG<덕유산의 장대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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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산에 만들어진 스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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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자연>





    ‘올레’와 ‘묻지마’개발주의


     제주는 지난 수십년 동안 개발과 보전의 논란을 지속시켜 왔다. 경제논리가 지배적이 되면서, 이 논란 자체가 많은 도민들 사이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 듯 하지만, 여전히 도민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제일 중요한 도정과제로 경제와 동시에 ‘환경’을 지목하고 있다. 자칫 분열적인 것 같지만, 제주의 자연을 중시하는 발전정책에 대한 요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도민여론의 균형감이 그나마 제주를 사람이 살만한 아름다운 곳으로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제주사회 공론의 양상은 논란은 그만하고 뭔가를, 혹은 뭐든지 ‘만들어 가자’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실제로 해군기지, 영리병원 같은 정책의 지지층에는 ‘묻지마 지지층’이 상당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지노, 케이블카도 마찬가지다.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제주발전의 돌파구가 요원해 보이는 상황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는 도민사회가 다른 선택에 대한 상상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수십만평에 달하는 마을의 공동목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해 마을의 주민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골프장이나 무슨 무슨 리조트 같은 개발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의 리더십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이것을 부추겨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연고와 이해관계에 기반한 독점구조를 만들어 온 것이 다름 아닌 민선도정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발전리더십이었다.


    올레의 열풍 한 가운데서 대조적으로 터져 나온 공무원 건설비리, 환경영향평가 비리, 도지사 친인척 비리등은 그러한 제주의 발전리더십이 얼마나 부패한 모습으로 공익을 빌미로 자신의 배만 불려 왔는지를 보여줬다.





      참다운 제주의 비전, 공론사회의 혁신부터 시작하자



      이제, 제주는 다시 기로에 섰다. 앞으로의 10년은 제주가 올레로 상징되는 ‘제주다움’의 발전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지금의 표류를 연장시킬 건지 하는 중요한 기간이 될 것 같다. 향후 10년이 제주미래의 향배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제주사회의 공론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차원에서 바뀌어야 한다.


      첫째는 공론의 방향이다.


    지금껏 제주사회 공론의 방향은 한마디로 ‘국제자유도시’였다. 그러나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는 GRDP 전국 최하위, 영세자영업률 전국 최고, 비정규직 비율 전국1위, 기초수급자 비율 전국 1위와 같은 경제지표와 전국 최고의 산림면적 감소율, 골프장 개발율, 도로개발율과 같은 환경지표, 하위수준의 재정자립도, 전국 꼴찌의 재정자주도 등의 자치지표만으로도 충분히 ‘실패’라 단정지을 수 있다. 투자유치면에서도 작년 9월 기준으로 지난 3년간의 투자 유치액이 8조9천억에 달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고용은 2만 6천여명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특히 관광개발사업에 따른 주민고용은 실제고용인력 4,611명 가운데 54%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나타나고 있다.


      관광정책도 표류하고 있다. 최근 최근 관광객 600만시대를 열었다고 고무되어 있지만, 관광객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의 여행비용 지출이 크게 늘어나지 못하여 서비스 산출액에 대한 관광수입 비중이 감소,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국내 여행비용(전국기준)이 2000년 이후 크게 늘지 않고 상당기간 정체된 상황이다.


     그런데 그간 제주의 공론은 국제자유도시라는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떻게 하면 외자유치를 많이하고, 이를 위해 규제를 대폭 줄이고, 이를 도민이 수긍하는 분위기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 ‘발전’이란 구체적인 개인들의 삶의 조건과 질을 담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개발’만이 발전을 설명해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반개발’이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경제성장=발전’이란 등식도 낙후해졌다. 발전은 비경제 영역의 여러 요소들, 문화, 복지, 안전, 직접민주주의의 증진, 생태다양성, 평화적 소통의 사회문화 제도의 성숙이 중요한 발전의 요소가 되고 있다.


     이것은 제주의 특성과 상당히 일치한다. 국민경제 영역에서 1%밖에 안된는 제주가 비 경제 영역에서는 매우 큰 경쟁력을 지니는 것이다.


     산술적 위상으로 제주의 비전을 따지는 구도에서 벗어나야 제주의 비전이 보인다. 가치의 위상에서 제주를 상정하고, 그에 맞는 발전비전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는 공론의 주체 문제이다.


     제주사회 공론의 주체는 그 범위가 뚜렷하다. 이른바 ‘오피니언 그룹’이라고 일컬어지는 공무원, 경제계 일부, 지식인, 시민단체 등으로 국한된다.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각종 세미나, 토론회에 보이는 얼굴들을 놓고 ‘식상하다’는 지적이 회자된다. 식상하다는 것은 그 만큼 내용이 지리멸렬했졌음을 의미한다.


     물론, 여지껏 제주사회를 주도해 왔던 공론주체들의 역할과 기여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만큼 고착화될 수 밖에 없는 한계 또한 성찰해야 한다. 더 열린사고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을 위한 공부와 탐색에 나서야 한다. 시민단체도 이런 점에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론의 확장이다. 공론의 확장을 위해서 공론주체가 다양하게 등장해야 한다. 제주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도내 곳곳에서는 자신의 업에 ‘가치’를 입히기 위해 노력하는 이른바 ‘현장 전문가’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공론영역에서 소외돼 있다. 이들이야말로 적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통해 제주의 비전을 발굴해낼 수 있는 새로운 창조자들이 될 수 있다. 이들의 건강한 삶과 활동이 네트워킹 된다면 그 자체는 거대한 제주의 비전을 생산해내는‘씽크탱크’로 충분히 역할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언론)가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에 나서야 한다. 이미 사회는 ‘개인’이 곧 미디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차원의 활발한 소통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이를 공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김녕마을의 '소셜디자이너'를 제주사회 공론의 주체로


      엊그제 김녕마을을 갔었다. 그 곳에서 만난 한 여성은 자기 마을에서 생산된는 농산물을 자연식품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더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스스로 연구활동도 열심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매개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적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미 그녀는 스스로 ‘소셜 디자이너’인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활발한 활동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활동은 ‘좁은’ 제주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고, 공론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제주사회 곳곳에 있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을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공론의 주체로 끌어들여야 한다. 언론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끝>

    ** 이 글은 시사제주 1주년 창간기념 기고문으로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