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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개발 20년, 그 현장에 서다](8)천미천을 가다 ,,,2011. 08. 03 한라일보

  • 불필요한 토목건설 생태계 파괴 결국 재해로 악순환




    입력날짜 : 2011. 08.03. 00:00:00











    ▲천미천 성읍1리 구간. 좌우로 콘크리트 제방에 둘러쌓여 있고, 중장비에 의해 깨진 암석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사진제공=김홍구
    천미천 자연암반 깨부순 흔적 선연
    정비 넘은 파괴 토목건설 이익 반영 결과
    하천정비사업·농어촌기반공사 사업 중복

    장마가 끝난 7월 23일, 내리쬐는 태양을 맞으며, 만인보는 천미천으로 향했다. 표선면 성읍1리 성읍초등학교에서 표선방면으로 가다 길 옆에 거대한 하수관로로 변한 천미천을 만났다.

    1. 깨어진 하천을 만나다

    하천정비사업을 마친 천미천은 황량했다. 하천 폭이 50~60m, 하천의 양 옆은 돌로 쌓은 제방과 콘크리트 제방이 이어지며 이 곳이 생명을 품은 젖줄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덮어 버렸다. 높이 4~5m의 제방에 갇힌 하천 바닥은 물 한 방울 없는 바위 사막을 보는 듯했다. 하천 바닥의 군데군데 자연암반을 깨어 부순 흔적이 선연하게 남아있고, 깨어진 암반은 물에 쓸려가 용암 암반이 덮기 전 퇴적된 황토 진흙층이 드러나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바위 사막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만인보 기행 참가자들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걷는 걸음이 담담하게 보였으나, 목적 없이 사방을 둘러보는 시선들은 여기가 하천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이렇게 변해 버린 모습에 할 말을 잊은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변해버린 모습에 분노하고, 어떤 이는 또 무참하게 깨어져 나간 바위 암반에 미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방법 밖에 없었을까' 라는 물음을 계속 던지며 걷는 걸음은 무거웠다.

    2. 과도한 하천정비사업, 숨은 비밀

    장마가 지난 천미천 정비사업 구간에는 물이 흐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장마철 흐른 물은 50~60m의 하천 폭의 일부분이다. 제방 근처에는 물이 흐른 흔적 조차 없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을 생각하더라도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2005년 수립된 '수해방지종합기본계획'을 필두로 한, 하천정비사업에 8천여 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건설과 토목을 아는 분들은 '건설비용은 잣대가 있으나, 토목은 잣대가 없다'라고 얘기한다. 집을 짓거나 도로를 포장하거나 하는 것은 거의 정확한 자재 계산이나 인건비 계산이 나오는데, 토목은 대략적으로 산출한 것으로 공사기간 내내 지켜 서서 작업량을 보지 않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토목사업은 최대의 이익창출을 위해 불필요한 부분까지 사업에 포함시킨다. 천미천의 정비를 넘은 파괴는 토건의 이익에 철저하게 봉사한 결과다.











    ▲성읍지구 농촌용수 개발사업 현장. 보를 설치하여 물을 가두는 시설이다.
    3. 천미천, 이름처럼 아름다운

    천미천은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이 하천은 성판악 인근 돌오름에서 발원하여 상류지역인 조천읍 교래리, 중류지역인 표선면 성읍리를 거쳐 표선면 하천리에서 바다와 만난다. 제주 하천이 주로 남쪽과 북쪽에 집중되어 있고, 동쪽과 서쪽은 하천이 발달하지 않았다. 동쪽으로 유일하게 발달한 하천이 천미천이고, 다우지역인 동남쪽의 빗물이 집중되는 하천이다. 천미천은 교래리 지역에서는 하천 바닥까지 나무가 들어서 있는 숲 자체이다가 중류지역인 성읍리에 이르면 영주산을 돌아가면서 구불구불한 사행천(蛇行川)의 모습을 보이고, 그 아래로는 암반과 폭포, 연못으로 이어지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중류지역의 아름다운 제주 하천의 모습을 본 만인보 기행 참가자들은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들에 넋을 놓았다. 하천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연못에서 무한한 평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에게도 격려를 했다. 더불어 이 곳이 더 이상 파헤쳐지지 않기를 기원하고 기원했다.

    4. 앞뒤 맞지 않는 정비사업

    천미천을 따라 성읍2리 영주산 북쪽에 이르면 또 한차례의 대규모 토목공사 현장을 만나게 된다.

    성읍지구 농촌용수 개발사업으로 이 지역이 과거로부터 비가 많이 오면 천미천이 범람하는 지역이다. 이 사업은 비가 많이 올 때 천미천의 물을 가두었다가 농업용수로 쓰기 위한 사업이다. 농어촌기반공사에서 시행하는 사업으로 사업비가 500억여 원에 이르는 대형사업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천미천이 일시적으로 범람할 때, 일부를 빼서 범람을 막는 역할과 더불어 이 물을 농업용수로 이용하여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는 물사용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점만 생각한다면 바람직한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천미천 정비사업으로 이미 이 지역의 수해문제는 해결이 되었는데, 저류지 역할을 하는 이 저수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최소한 저류지의 구실은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천미천정비사업과 농어촌기반공사의 사업은 중복사업이다. 천미천 정비사업은 성읍지역의 수해를 막기 위한 것인데, 이 저수지가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하천정비사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두 사업을 합치면 1천억에 가까운 국비와 지방비가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인데 저수지를 먼저 만들었다면 하천정비사업은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농어촌기반공사의 저수지도 찬찬히 뜯어보면 대규모 토목사업의 전형적인 문제가 보인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하지만 경관지에 대규모의 토목공사가 진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의 생태계와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몇 십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개발보다, 하천의 범람할 때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지역을 매입하여 소규모의 저류시설과 농수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제주에서도 대표적인 다우지역으로 농업용수를 크게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지도 않다.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토목사업을 위한 토목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이 점은 특히 대규모 저수지 주위로 넓게 조성한 길이라든지, 벌써 경관지역을 노리고 땅을 매입하려는 움직임을 보면 이런 의심이 더욱 짙어진다.

    5.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토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제주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가 불필요한 토건 즉, 토건을 위한 토건으로 산야가 파헤쳐지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연훼손의 결과가 재해로 다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지금의 현실을 볼 때 토건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합리성이 절실한 때이다. 과거 경기부양을 위해서 행하였던 '뉴딜정책'과 같은 토건부양정책은 대기업화되고 기계화된 현재에는 소수 대기업의 이익창출에 봉사하는 부자정책일 뿐, 더 이상 국가 전체적인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 이를 통해서 불어난 기업의 덩치는 더욱더 많은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요구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천 생태계를 살리면서 수해를 막으면서도 미래자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제는 새 길을 찾아야 한다.

    [한라일보 - 천주교생명위원회-참여환경연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