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민 지사의 연두기자회견에 대한 제주참여환경연대의 논평
우근민 지사는 어제(1월 9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연두기자회견의 제목은 "도민이 주권자인 해를 열어 나가겠습니다"였다. 제목만 놓고 볼 적에는, 그 동안 도민을 주권자로 받들지 못했던 행정을 반성하며 앞으로 도민을 주인으로 대접하는 행정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취지로 긍정적으로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정작 내용은 이와는 거리건 먼 형태로 일관해 이에 따른 입장을 밝힌다.
1. 기자회견문의 실내용은, '도민의 주권자'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행정구조 개편, 한라산 케이블카 등 주요현안을 충분한 토론과 합의과정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민투표'라는 형식을 빌려 돌파하고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미 밖에 없다.
2. 특별자치도의 편협한 이해 - 행정주도의 특별자치도 추진을 경계한다
우지사가 밝힌 '특별자치도 추진' 로드맵에 따르면, 특별자치도의 핵심을 행정구조 개편과 특별행정기관 이양 등의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제주의 미래를 결정할 이런 커다란 담론을 '도민합의'에는 소홀한 채 관 주도로 일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발상을 비치고 있다.
노대통령은 특별자치도 구상을 언급하면서도 '분명한 전제'를 깔았다. '도민 합의'가 그것이다. 여기서 도민합의란 현재 도당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계획과 구상을 행정이 먼저 완료한 후 도민들에게 투표로 묻는 절차적 과정이 아니다. 특별자치 전략을 입안하고 추진해 나가는 전 과정에 적용돼야 하는 '대원칙'이다.
이런 점에서 우지사가 밝힌 특별자치도 로드맵은 의회와 시민사회를 배제한 행정주도의 추진방침으로 보이는 바, 이럴 경우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 - 특별자치도 추진과정에서의 협력 - 는 요원해 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3. 깨끗하고 투명한 행정을 위한 실제적 제도 도입 필요
- 정부의 인사정책로드맵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분권시범도 운운 무색
다음은 우지사가 밝힌 '깨끗하고 투명한 행정'을 위한 제도이다. 우지사는 그 대안으로 "실·국장급 인사는 도지사가 직접 임명하고, 과장급 이하는 실국장이 추천한 승진인사 대상자를 인터넷에 공개한 후 다면평가를 통해 인사위에서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투명한 행정을 위해서는 '지방행정 공개제도'를 개선하여 각 위원회 회의록, 간부회의 회의록, 회의자료 등도 홈페이지나 도정신문 등에 적극 공개해야 한다. 또한 행정정보공개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개선을 통해 단체장 추천인수를 줄이고, 위원 구성을 공익적이고 시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인사와 전문가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기준을 객관화해야 한다. 나아가 중립적인 '지방인사위원회'의 설치로 지방정부 인사 시스템의 공정성·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과장급 이하만 다면평가를 통해 그것도 기존의 인사위에서 결정한다는 정도로 투명한 행정을 이루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반면 정부의 인사정책로드맵에는, '과장급 이상은 전원' 다면평가를 통해 승진에 반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우지사의 정책은 정부의 지방분권로드맵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서, 분권시범도 운운하는 게 우스울 정도이다.
4. 예산집행의 투명성? - 소가 웃을 일
예산집행의 경우도 우지사는 "반드시 집행해야 할 예산은 과감하게 쓰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줄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투명한 예산 집행과는 거리가 먼 일반적 얘기에 불과하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의 관행에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임은 물론, 의회의 의견마저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오만한 자세에 다름아니다(이는 이후 기자와의 질의 응답시간에 도의회에 대한 직접적 불만으로 표명한 바 있다).
지방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방재정 분석 및 진단제도를 강화함은 물론, 복식부기제, 재정출납관 독립성 강화, 지방채 발행시 신용평가제 도입 등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언급한 것처럼 각종 관급공사 입찰에 있어 수의계약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경쟁입찰과 인터넷 공모 등의 투명화 또한 도모해야 한다. 이 외에도 '주민참여예산제'의 도입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도입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예산집행의 투명성 운운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5. 말뿐인 '도민과 함께 하는 밀착행정'- 실질적인 도민참여 방안 제시 필요
"도민의견을 수렴하여 도정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정도의 일반적 얘기로는 '도민과 함께 하는 밀착행정'이 될 수 없다. 도민들은 '잠바차림의 도지사'도 좋지만, 그에 앞서 말 그대로 도민 참여가 보장되는 제도로서의 행정이 구현되길 원한다. 대법원에 구명서명운동을 벌인 단체에 찾아가 '고맙다'고 인사하며 "지사구명운동이 도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도정책임자 보다는,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는 떳떳한 도지사를 원한다.
실질적인 도민참여가 보장되는 행정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주민소환제, 주민소송제의 도입을 위해 앞장서 노력하고, 기존의 '주민감사청구제도'나 '주민발의제도'의 실효성이 강화되도록 청구인 숫자 요건완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주민참여예산제'의 조속한 실시와 '정보공개법'의 개정 등을 위해 노력함은 물론, 각종 위원회의 민주적 개편이 필요하다.
6. 권한도 없는 케이블카 찬반투표 - 도민분열 초래 우려
국립공원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여부는 환경부의 고유 권한이다. 현재 환경부는 '자연공원내 삭도의 허용여부 및 타당성 조사' 용역결과를 토대로 일반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한 후 올해 1월 공청회와 2월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4분기 안에 삭도(케이블카) 관련 정책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이후 '평가위원회'를 조직해 각 자치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신청한 국립공원내 케이블카 설치 평가와 심사를 하게 된다. 이에 따르면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여부는 빨라야 올해 말에 가서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현재 제주도에서 케이블카 설치를 강행하기 위해 주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발상은, 공공연히 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싼 찬반양론에 불을 지펴 논란만 확대 재생산시킬 공산이 크다. 만일 도지사가 케이블카 설치권한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권한도 없는 도지사가 설치 찬반투표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백보 양보해 주민투표를 통해 50%를 가까스레 넘는 찬성표가 나왔다고 치자(하기야 52% 찬성 운운하며 유치신청서를 낸 도당국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추진하는 게 자치시대의 민주 행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도민합의에 의한 특별자치도 추진 등 굵직한 현안을 앞에 둔 시점에서 굳이 도민분열을 초래하면서까지 이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존심 때문인가?
7. 진정으로 도민이 주권자인 시대를 열어가길 희망한다면 - 말의 성찬보다 실제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진정으로 우지사가 도민이 주권자인 시대를 열어가길 희망한다면 말의 성찬보다는 실제적인 제도의 도입으로 화답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주민참여제도의 도입이 그것이다. 우지사는 이러한 제도들을 앞장서 도입할 자신이 있는가?
이것이야 말로 도민통합은 물론 우지사가 천명한 도민주권자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나아가 제주특별자치도의 성패를 가름할 주요한 키이다.
2004. 1. 10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조성윤/이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