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훼손지 복구논란과 관련, 제주도의 왜곡된 진상조사결과 발표에 따른 환경단체 긴급 공동기자회견문
최근 방영된 KBS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하여, 한라산 정상 부근의 훼손지 복구를 위해 사용된 ‘녹화마대’가 쓰레기 더미로 이뤄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져, 도민들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경악하고 있다. 또한 최근 경찰 조사에 따르면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가 지난 98년 어리목등산로인 윗세오름과 사제비동산 사이의 훼손지를 복구하면서, 만세동산 주변의 평탄지를 굴삭기를 동원 채취하는 등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없이 공사를 벌여 오히려 만세동산 주변을 훼손시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이것뿐이랴. 최근에는 지난 97년 한라산 훼손지 복원을 위해 식재 된 구상나무들이 이미 고사했거나 시름시름 말라죽고 있다는 보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동안 이와 관련한 입장표명을 가급적 자제해 왔다. 그것은 사법당국이 관계 공무원들을 상대로 쓰레기가 유입된 경위와 제대로 된 관리 감독 여부 및 토지 채취와 관련 문화재보호법 위반 여부를 신속하게 수사하고 있어, 그 조사결과를 일단 지켜보자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당국은 아직까지도 이와 관련하여 공식적인 사과나 최소한의 유감표명조차 없음은 물론, 심지어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책임회피성 해명만 해 왔음을 주목한다. 심지어 어제는 환경단체와 산악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실시한 지난 2일의 현장조사 결과마저 왜곡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이에 반박하는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녹화마대와 관련하여!
한라산 복구계획은 당초부터 그 복구공법의 과학성 및 타당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러한 논란이 일자 제주도당국은 저지대의 흙 사용으로 생길 지 모를 생태계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심토(深土) 만을 사용했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깨끗한 심토만 골라 담았다는 녹화마대 속에 비닐, 유리조각, 고무, 콘크리트 등 각종 쓰레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를 통해 첫째로 알 수 있는 것은, 그 과정과 책임여부를 떠나 ‘깨끗한 심토’만 사용했다는 당국의 주장이 분명한 거짓이라는 사실이다. 심토 사용이 중요한 것은 저지대식물과 귀화식물의 유입으로 인한 식물생태계 교란의 우려 때문임은 잘 알려져 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와 관련한 제주도당국의 태도이다. 당국은 당초 이러한 쓰레기가 98년도에 실시된 녹화마대에서만 발견됐다고 해명하면서, “현재 훼손지에 투입되는 흙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환경보호단체 등과 공동 확인조사를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일요일 직접 답사한 결과 최근에 복구된 남벽지역의 녹화마대에서도 쓰레기가 발견되었다. 관리사무소의 주장이 허구로 드러난 것이다(사실 이것이 이번 조사결과의 핵심이었다). 어쨌든 이로 미루어 보아, 복구사업이 시작된 94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모든 흙마대가 문제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셋째로, 관리사무소 측은 KBS 방송 이후 자체조사한 결과, 모건설업체가 시공한 북벽정상의 흙마대 4만 2,600개 중 2,900개, 사무소측이 직접 시공한 윗세오름 훼손지에서도 흙마대 6,600개 중 110개에서 쓰레기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이번 환경단체와의 공동조사를 통해 4만 9,300개의 마대 속에서 쓰레기 10.5kg을 수거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 참여자 90여명 중 1~2인의 발언을 침소봉대하여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라고 발표하는 등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기까지 하다. 즉 제주도당국은 이번에 발견된 쓰레기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축소해석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공원 측은 향후 재발방지에만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데 있다. 공원 측이 발표한 조사결과 또한 복구된 마대를 전량조사한 것이 아니라 가시적으로 보이는 마대에 한하여 표본조사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 당시 참여자 대부분이 훼손지복구에서 발견된 쓰레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사실,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쓰레기가 거의 모든 복구지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복구사업에 사용된 마대 전체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정밀한 재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공원사무소의 주장처럼 기존의 것은 묻어두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답변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세동산 훼손지 복구용 흙 채취와 관련하여
이와 관련 제주도당국은 훼손이 진행되는 원래의 습지를 더 이상 훼손이 안되도록 주변을 정비하여 원래의 습지모습으로 복원하고, 복원 후 나온 잔토는 사면정비 및 녹화마대에 넣어 주변훼손지를 복구했으며, 이는 문화재청에 일괄적으로 형상변경허가를 한 내용 속에 포함돼 있으므로 문호재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 측에서는 97년 전체 훼손지에 대해 허가를 받았다고 하나 이 허가는 등산로 입구에서 흙을 운반하여 복구하는 것이지 현장의 흙으로 복구하라는 것은 아니며, 이는 현상변경허가조건에 위반되는 무단채취라고 보고 있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사법당국의 판단에 맡길 문제이지만, 최근 발표된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파낸 토사가 5톤 트럭 45대 분량인 226.4톤 분량에 달한다는 소식으로 미루어 보아, ‘잔토’만 사용했다는 제주도당국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식재된 나무의 고사와 관련하여
제주도당국은 이와 관련 “복원한 구상나무 활착율이 90%에 이를 정도로 복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일부 나무들은 노루들이 뿔로 들이받아 고사되는 사례도 있다“고 황당한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만세동산 일대에 식재된 130여 그루 중 활착율이 비교적 양호한 것은 50%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고사했거나 생육상태가 상당히 불량하다고 한다. 이 구상나무 뿐만이 아니다. KBS환경스페셜에 따르면 최근 윗세오름 오름약수 주변에 식재된 병꽃나무도 거의 고사해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이 것이 단순한 시행착오로만 볼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 이식된 토양이 완전히 고착된 이후, 즉 완전히 ‘한라산토양화’된 이후 식재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여 건수주의의 한 단면은 아닌지 생각해볼일이다. 그런데도 이를 애꿎은 ‘노루탓’으로 돌리는 웃지 못할 공원측의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의 견해를 기초로 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주도당국에 요구한다.
1. 제주도당국은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책임을 지고, 도민들 앞에 공식 사과하라!
그 위법성 여부의 판단과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이전에, 그 사업의 연속성을 따져 보더라도 그 관리감독의 책임이 분명하게 도당국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제주도당국은 더 늦기 전에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원인과 과정을 즉각 한 점 의혹 없이 스스로 밝히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2. 제주도당국은 현재의 복구사업을 전면 중지하고, 그간의 복구실태에 대한 전면재조사에 착수하고, 복구공법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라!
앞에서 밝힌 대로 녹화마대 속의 쓰레기가 98년도의 것만이 아닌 최근의 복구용 마대에도 포함되어 있음이 드러난 바, 94년부터 사용된 녹화용 복구 마대를 전면 조사하고, 이로 인한 환경피해를 막을 수 있는 예방조치를 먼저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립적인 외부전문가를 위촉하고 도내 환경단체의 협조를 받아 전면 정밀 재조사해야 한다. 또한 지난 91~2년에 시행되어 실패로 끝난 앙카메트 등도 즉각 치워야 하며, 그간의 돌길 등산로 정비 사업, 나무식재 사업등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차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구공법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검토위원회’(관련 전문가와 환경단체의 인사를 위촉)를 구성하여 새롭게 검증받아야 함을 주장한다.
3. 그 동안 한라산 보호용역에 투입된 예산과 용역결과의 실효성에 대한 부분을 철저히 감사하고 부실 용역과 훼손지 복구사업에 대한 부실책임을 물어야 한다.
85년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한라산용역만 해도 10여건에 달하며, 복구예산에만 쓰인 돈도 천문학적 액수이다. 용역을 위한 용역은 물론 훼손지 복구사업에 막대한 혈세만 낭비하며 실효성을 보지 못하는 현실, 심지어는 쓰레기를 한라산정상에 나르는데 그 막대한 비용이 쓰였다는 사실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한라산 케이블카설치를 반대하면서 그간 한라산 등산로의 훼손이 등산객의 책임만이 아니라 관계당국의 잘못된 등산로 관리정책에 의해 초래된 이유가 크다고 강조해 왔다. 반면 제주도는 한라산보호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더 이상 다른 대책이 없다고 하면서, 그 한 대안으로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을 강변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이 사건은 그간 도당국이 입만 열면 외치던 한라산 보호정책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구체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복구를 위한 사업이 또 다른 훼손을 낳고 있다.”
“쓰레기로 뒤덮인 한라산이 지금 신음하고 있다.”
사법당국의 엄정한 조사와 제주도당국의 즉각적이고 책임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2001. 9. 5
제주참여환경연대(舊 제주범도민회)
제주환경운동연합
예래환경연구회